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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전쟁 정보

제1연평해전(第一延坪海戰)은 1999년 6월 15일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대한민국 해군간의 전투이다. 대한민국 해군이 승리하였지만 이 전투는 2002년제2연평해전으로 이어졌다.

과정 편집

1999년 6월 6일부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측 경비정이 매일 북방한계선을 넘어와 몇 시간씩 한국 영해에 머물면서 반응을 살피고 돌아가고 있었다.

1999년 6월 15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측의 움직임이 9일째 되는 날인 오전 경비정 4척이 꽃게잡이 어선 20척과 함께 북방한계선 남쪽 2㎞ 해역까지 내려왔다. 이에 대한민국 해군은 참수리급 고속정과 초계함 10여 척을 동원하여 오전 9시 7분과 9시 20분 두 차례에 걸쳐 선체를 충돌시키는 밀어내기식 공격을 감행하였다.

충돌공격을 받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경비정 등산곶 684호는 25㎜ 기관포로 공격을 가해 왔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어뢰정 3척도 가담하였다. 결국 등산곶 684호는 대한민국 해군의 참수리급 고속정, 포항함의 반격으로 반파되어 퇴각하였다.

이날 교전에서 참수리급 고속정 325호의 정장 안지영 대위가 부상을 입고, 대한민국 장병 7명이 부상당해 국군수도병원으로 긴급 후송되었다. 이에 반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어뢰정 등 함정2척이 침몰하고 3척이 대파되어, 최소 70여명~200여명의 사상자가 있었으리라 판단 추측하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해군은 교전에서 생존해 돌아온 등산곶 684호의 갑판장을 새 함장으로 임명하였으며, 대한민국에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였다. 이에 대해 당시 2함대 사령관으로 전투를 지휘했던 박정성 제독은 신동아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대기발령으로 보직을 옮긴 것은 당시 김대중 정부가 북한의 요구를 무조건 수용하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실제로 김대중 정부는 이후로도 수동적인 입장을 고수하였고 2002년 제2연평해전에서는 6명의 전사자가 발생하였고 참수리급 고속정357호가 전투 후 침몰하였다.[1]

참고자료 편집

함께 보기 편집

주석 편집

  1. 박정성 전 해군 2함대사령관의 연평해전 비화”, 《신동아》, 2008년 6월 25일 작성.
틀:대한민국의 사건 및 사고en:First Battle of Yeonpyeong

fr:Première bataille de Yeonpyeong ja:第1延坪海戦 zh:第一次延坪海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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